기록이 취미인 사람입니다만

Apr 10, 2025 · 9 min read

나는 본질적으로 정적인 것을 선호한다. 사람을 만나고 떠들썩한 시간을 보내고, 활기차게 활동하는 것도 물론 좋아하지만, 오롯이 혼자가 되어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 하루 중 30분이라도 꼭 필요하다.

혼자가 되었을 때 가장 많이 하는 것은 바로 글쓰기와 읽기다. 활자만큼 나의 내면을 잔잔한 호수처럼 차분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잘 없기 때문이다. 외부에서 받은 자극으로 인해 일어난 파도와 같은 거친 물결이 활자를 만나면 급격하게 차분해진달까.

나는 종종 밤에 드뷔시의 달빛을 들으면서 빈 종이를 마주한다. 내가 아끼는 펜으로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지금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한다. 종이 앞에서는 투명하게 내 모든 걸 비춘다.

복잡하게 꼬여있는 생각들을 글로 풀어내면서 감정들을 구체화해 실체 하는 글로 만들어 내는 것은 나에게 묘한 해방감을 선사한다. 특히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감정에 해당하는 아주 딱 들어맞는 단어를 찾아냈을 때 그 쾌감이란, 정말 이루 말할 수 없다.

이후 정리된 생각을 바탕으로 나를 재정의하는 과정을 가진다. 새로 갖게 된 생각을 바탕으로 나는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 본다. 매일 생각이 달라지므로, 나는 매일 조금씩 새로워지는 셈이다. 이게 글쓰기의 가장 큰 장점이다. 매일 조금씩 더 새롭고 발전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

즉 글쓰기란 나에게 있어서 감정과 생각을 정리해 구체화하고, 나를 새롭게 정의하며 조금씩 발전해 나가는 아주 건실한 취미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뭘 적는가

내가 쓰는 글은 크게 세 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다.

생각과 감정을 정리한 글

일기와 회고 모두 앞서 설명한 대로 아주 솔직하고 스스로 투명하게 적는 편이다. 아무도 보지 못하는 공간이므로 매일 느꼈던 감정을 솔직하게 적는다. 그 누구한테 말 못 할 사소하고 유치한 감정까지.

일기는 매일 조금씩 쓴다. 이런 감정과 생각은 적지 않으면 휘발되기 마련이므로, 그날 밤에 쓰는 게 가장 좋다. (물론 피곤하면 종종 다음 날 아침에 적기도 한다)

만약 감정이 더 요동치고 불안한 날에는 회고를 추가로 적는다. 회고는 아무 노트를 펼처놓고 쓴다. 마음이 풀어질 때까지 몇 줄이고 빼곡히 글을 적는다. 이렇게 쓰고 나면 마음이 아주 후련해진다. 마음이 괴롭다면 이렇게 글을 쭉 써보는 것을 추천한다.

개인적으로 이런 글들은 타이핑하는 것보단 종이와 펜을 사용해서 직접 적는 게 더 좋았다. 종이의 감촉과 펜의 사각거림이 나의 감정을 풀어내는 데 큰 도움을 줬다.

사실 정리를 위한 글

학습 정리나 블로그같이 지식이나 인사이트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글들은 사실상 내가 해당 지식이나 인사이트를 명확히 체화하기 위해서 쓰는 글이다.

이런 글들은 보통 작성 전부터 꼼꼼히 목차를 기획하고,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구체화한 뒤에 작성에 들어간다. 이후 계속해서 다듬는 과정을 통해서 글의 흐름이 매끄러운지 살펴본다.

이렇게 체계적으로 작성하는 과정을 거치다 보니, 글 1개를 작성하는데 보통 하루가 꼬박 걸린다. 노력이 많이 들어가지만, 작성하고 나면 스스로 해당 지식이나 인사이트를 남에게 술술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머릿속에 체계화된다.

메모

메모는 기억을 위해 작성하는 글들이다.

다이어리에는 주로 구체적인 사실을 기록하는 데 사용한다. 일정이나 매일 몸무게나 걸음 수, 습관 달성 여부, 오늘 했던 일들을 짧게 기록한다. 이렇게 하면 습관 달성 여부나 몸무게 트레킹이 가능해서 나의 일상을 관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데일리 노트는 주로 옵시디언에 작성하는데, 오늘 해야 할 업무 즉 투두리스트를 작성하고, 그 하단에는 자유롭게 메모를 작성한다. 쓰다 만 블로그 개요, 유용한 사이트들 등등 자유로운 형식으로 적어놓는다. 이렇게 날짜를 토대로 메모를 작성해 두면, 나중에 찾아야 할 메모가 있을 때 날짜순으로 훑어보면 되므로 몹시 편리하다.


필기도구 수집병

글쓰기를 좋아하니 필기도구를 좋아하게 된 건 어쩌면 아주 당연한 처사이다. 나는 필기도구만 보면 눈이 돌아가서 사 모으는 병이 있다. (지금 있는 잉크들만 해도 3년은 앞으로 거뜬히 쓸 듯하다) 나는 주로 만년필과 노트, 잉크들을 수집한다.

가지고 있는 만년필은 총 6자루이다. (파커 조터 F촉, 세일러 프로기어 슬림 14k EF촉 , 홍디안 920s F촉, 펠리칸 소버렌 M605 슈트레제만 F촉, 트위스비 에코 로즈골드 스모크 B촉, 카웨코 스포츠 M촉)

나는 필기감이 부드러운 만년필들을 선호한다. 가지고 있는 만년필 중 가장 좋아하는 펜은 펠리칸 소버렌 M805이다. 검은색 스트라이프가 심플하면서도 몹시 아름답고, 촉이 매우 부드러워서 쓸때마다 정말 행복하다. 아름다운 펜인 만큼 가격이 정말 사악하다. (52만원…)

종이는 미도리 종이를 제일 좋아한다. 가장 깔끔하고 부드럽게 써지는 것 같아서 좋아한다. 올해는 그래서 미도리 다이어리를 장만했다.

잉크는 회색과 파랑 계열 잉크를 제일 선호한다. 회색 잉크는 이로시주쿠 동장군과 디아민 얼그레이를 제일 좋아하고, 파란 계열 잉크는 파커 블루블랙을 제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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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영

카비게임즈 대표이자 1인 인디게임 개발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