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건너가고 있는가? - 『건너가는 자』

Apr 10, 2025 · 12 min read

하고 싶은 일의 형태가 자꾸 바뀌다 보니, 한 가지를 꾸준히 해온 사람들에 비해 내가 잘못된 길을 걷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선택한 길에 대해 후회는 없지만, 백수 기간이 길어지면서 알 수 없는 불안이 무의식 깊은 곳에서 차오르고 있었다.

이런 마음을 달래기 위해 무작정 서점에 들렀다. 그러다 문득 시선이 머문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나는 보통 책을 고를 때 큰 기준이 없다. 그냥 서점을 돌아다니다가 갑자기 끌리는 책이 있으면 집어 든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렇게 선택한 책들이 내 상황에 딱 맞는 경우가 많다. 마치 ‘필요한 책이 나를 부르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 책은 최진석 철학자가 반야심경을 쉽게 풀어 설명한 내용을 담고 있다. 서양 철학은 대학교 교양 수업 등을 통해 접해본 기억이 있지만, 동양 철학, 특히 반야심경이나 불교 사상은 나에게 거의 낯선 영역이었다. 그래서 더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동안 내가 불교에 대해 알고 있던 것은 ‘무소유’ 정도였고, 그것조차도 “속세를 떠나라”는 식의 소극적인 메시지로만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책을 읽고 나서 보니 그 이해는 완전히 잘못된 것이었다.


결국 모든 것은 공이다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존재 형식은 본질이 아니라, 관계에 기반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본질적인 성질을 근거로 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계기들을 관계로 존재합니다. 세계의 실상을 아는 것이 해탈의 출발점인데, 세계의 실상을 한마디로 축약해 표현하면 그것이 바로 인연이고 관계인 것입니다. 세계의 모든 것은 상호의존 관계 속에서 존재합니다.

모든 의지는 그 의지 자체에 실제적인 근거로 발휘되지 않습니다. 그 의지는 다른 수없이 많은 기억과 희망과 욕망, 그 모든 것이 연합하여 발휘됩니다. 그래서 지금 발휘되는 의지도 어떤 본질적인 근거나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도 여러 계기가 관계를 맺으며 그렇게 드러나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행온도 공입니다.

예전엔 나를 이루는 모든 것—성격, 가치관, 태도, 욕망 등—이 다 나에게 고유한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돌아보면, 이 모든 건 주변 환경이나 관계에 따라 쉽게 변해왔다. 돌아보지 않았기에 변하지 않은 것이라 멋대로 착각한 것이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다’라고 착각했던 것들은 사실 그때그때의 맥락 속에서 형성된 것이었다.

내가 가진 생각과 가치관 역시 책, 미디어, 가족, 친구 등 외부의 영향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 모든 것이 결국 외부로부터 온 것이고, 언젠가는 또 바뀔 수 있다.

내가 가진 생각이 나의 것이 아니고 변할 수도 있다. 어쩌면 논쟁하고 있는 대상의 생각을 이해하게 될 수도 있고, 그런 생각을 하니 내 생각을 정답처럼 여기며 타인과 논쟁을 벌였던 일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스스로를 정의하려 애쓸 필요도 없다고 느꼈다. 나는 진지하다가도 가볍고, 작은 일에 예민하다가도 큰 일엔 태연하다. 이런 모순된 모습들이 어릴 땐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지금은 이것들 모두가 ‘나’라는 생각이 든다. 이젠 스스로를 어떤 한 틀로 규정짓지 않기로 했다.

건너가야 한다

아는 것을 디딤돌 삼아 모르는 것으로 넘어가려고 발버둥 치는, 이 모습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태도입니다.

어디에 서 있건 지금 이 자리에서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바탕으로 해서 다음을 도모하는 것, 익숙함을 뒤로 하고 낯설면서도 위험하고도 해석되지 않은 곳으로 건너가는 용기 있는 동작, 이것이 바라밀다입니다.

반야가 되었든 열반이 되었든, 그것을 관념화하고 개념화해서 하나의 틀로 정하면 반야도 열반도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저 무한한 건너가기와 무한한 부정만이 있을 뿐입니다. 무한한 건너가기와 무한한 부정의 과정에서 등장하는 새로운 자기, 참된 자기를 기다리는 일이 지혜의 궁극이라고 말합니다.

모든 것이 ‘공’이라면, 인생에서 우리가 하는 모든 노력도 무의미한 걸까? 책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오히려 ‘공’을 인정하는 순간, 더 자유롭게 나아갈 수 있다고.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다는 건, 동시에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계를 해체하고, 내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넓히는 일. 부지런하게 계속 건너가는 것, 그게 곧 정진(精進)이고, 부처가 강조했던 삶의 태도다.

나에게 정진은 매일 스스로를 돌아보며 일기를 쓰는 일이고, 주기적으로 책을 읽으며 생각을 넓히는 일이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끊임없이 탐색하며, 나를 구체화해나가는 과정이다. 이건 평생 멈추지 않고 이어가야 할 일이다. 멈추는 순간, 생각은 굳고 진부해지니까.

천상천하 유아독존

비교 속에서 가장 높은 깨달음이 아니라, 비교를 시도하지도 않는 가장 수준 높은 깨달음을 뜻합니다. 비교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기준은 자기 혼자만의 것이 아닙니다. 비교하려면, 비교를 위한 대조군이 필요합니다. 비교에 빠지면, 동의가 되었든 비난이 되었든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 매우 깊이 좌우될 수밖에 없습니다. 당연히 박수를 받으려고 애를 쓰게 되지요. 그러다 보면, 자그마한 박수 소리에도 쉽게 넋을 놓게 됩니다.

특정한 이념을 공유하는 집단 속에서, 하나의 기준을 공유하면서 상대적 우위의 인정을 갈구하는 자가 아니라, 결국 고독하게 혼자 서있는 자가 천상천하 유아독존에 가깝습니다. 이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 가져야 할 지혜가 바로 반야지이고, 반야지는 바라밀다, 즉 건너가기입니다.

정진하며 나아가는 길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나’여야 한다. 타인을 기준으로 삼을 필요는 없다. 타인에게는 그만의 길이 있고, 나는 나만의 길을 걸을 뿐이다.

요즘은 타인의 삶을 너무 쉽게 들여다볼 수 있다. SNS를 통해 어디서 살고, 무엇을 먹고, 어떤 삶을 사는지 손쉽게 알 수 있다. 이런 정보에 과도하게 노출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남의 속도에 나를 끼워 맞추게 된다.

하지만 고통의 대부분은 비교에서 비롯된다. 스스로 만든 기준에 나를 가두거나, 타인의 잣대를 내 삶에 들이대는 일은 결국 나를 병들게 한다. 그게 더 편하고 익숙해서 무심코 따르지만, 결국 내면의 공허함만을 남긴다.

그래서 나는 의도적으로 외부 정보를 차단하려 한다. SNS를 끄고, 혼자만의 시간을 확보하고, 생각을 글로 정리한다. 시끄러운 세상 속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중심을 잡기 위한 나만의 방식이다.

불안하고 흔들릴 때일수록 내면으로 깊숙이 들어가야 한다. 결국 이 인생은 내가 사는 것이고, 내가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대기업에 취업했고, 누군가는 투자로 큰돈을 벌었다고 한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이 올라오기도 한다. 하지만 남들의 삶이 아무리 화려해 보여도, 그것은 그들의 이야기일 뿐 내 인생은 아니다.

그러니 질투도, 아쉬움도 가질 필요 없다. 나는 나만의 속도와 방향으로 충분히 잘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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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영

카비게임즈 대표이자 1인 인디게임 개발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