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회고

Apr 10, 2025 · 21 min read

처음 블로그에 쓰는 회고이므로, 짧게라도 2023년에 대한 회고 역시 하고자 한다.

각 2023년과 2024년도는 아래와 같은 키워드로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2023년: 고민과 방황의 해

2022년, 게임 회사 기획자로 1년간 근무를 했다. 게임을 만드는 데 필요한 문서를 작성하고, 내가 만든 문서가 실제로 게임에 반영되는 과정을 보는 건 즐겁고 보람찬 일이었다.

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같은 일을 반복해서 하게 되었고, 더 이상 업무 효율성을 올리고 성장하는 데 한계를 느꼈을 때, 길을 잃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 거지? 라고 물었을 때 답이 쉬이 나오지 않았다.

일단 쉬면서 생각을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2023년 퇴사를 했다. 악재는 연이어서 온다고 했던가.
이후 오롯이 혼자가 되는 경험을 1년간 했다. 의지와 상관 없이 나와 맞지 않는 인연을 모조리 정리하게 되었고, 오래 사귀었던 연인과 이별했다. 필요없는 모든 물건을 내다 버렸다.

나를 꾸미고 수식하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털어내니, 그곳에 남는 건 나뿐이었다. 홀로 남은 나의 모습, 날 것의 나는 너무 적나라해서 스스로 자괴감을 느끼기 아주 충분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앞서서 나아가는데, 왜 나는 나아가지를 못하는지. 나는 왜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지, 왜 나는 나아갈 길을 찾을 수가 없는지, 그 모든 것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사실 찾지 않았다. 그 모든 것의 원흉이 스스로에게 있는 것 같아서 애써 외면했던 것 같다.

나아가고 싶은데 길을 잃었다. 길이 무수히 많은데, 이중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 알지 못해서 멀뚱히 서 있었다.
길을 잃었다며 도움을 구하면 사람들은 ‘네가 좋아하는 게 뭐야? 심장이 뛰는 일을 해!’라고 조언하곤 했다. 그래서 지난 세월을 곰곰이 되돌아보면서 진짜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생각했다. 그건 몹시 어려운 일이었다. 인생의 1분기를 보냈음에도 나는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무엇을 해야 할지도, 어떻게 해야 할지도 감이 오지 않아 하루하루 폐인처럼 살아가다가. 이대로 아무것도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몸과 마음이라도 갈고 닦기로 했다.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야근과 잦은 간식 섭취로 인해 불어난 몸을 관리했다. 다이어트와 식단에 대한 책을 수집해 잔뜩 읽고 실천했다. 간헐적 단식, 자연 식물식, 저탄고지 등등 이것저것 시도해 보고 내 몸에 맞는 방법을 적용해 17kg을 감량했다.

1년간 약 80권의 책을 읽었다. 소설, 인문, 철학, 경제 등등 분야를 가리지 않았다. 이 중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와 명상록이라는 책을 가장 감명 깊게 읽었다. 이 두 책은 인생의 힘든 시기는 나의 잘못으로 인함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두 책을 읽고 마음이 보다 편안해져서 이 시기를 잘 보낼 수 있었다.

이 시기는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내면으로 들어가 ‘나’라는 사람의 본질을 고찰하는 해였다. 그때는 괴로웠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꼭 필요한 시기였다고 생각한다. 혼자가 되는 시간을 통해 내면을 잘 다지고, 내가 진짜 원하는 것들을 발견할 수 있었으며 보다 성숙한 인간이 되었다. 나를 더 잘 이해하게 된 것도 큰 수확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결론적으로 나는 체계화에 미쳐있는 사람이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효율을 사랑하고, 체계화에 장점이 있다. 그리고 체계화를 성공적으로 해냈을 때 성취감과 행복감을 느꼈다. 그래서 항상 새로운 것을 접하고 체계화하고 적용할 수 있는 그런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2024년: 시작과 도전의 해

고민은 2024년 초까지 이어졌다. 책을 읽고 정리하기를 반복하면서 생각을 정리하기를 반복하다가, 문득 3월 말에 개발자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어떤 맥락에서 떠올렸는지 잘 모르겠다. 불현듯 든 생각이었다. (삶의 중요한 결정들을 때때로 이토록 가볍게 시작되는 것 같다. Es muss sein!)

그래서 무작정 공부를 시작했다. 유튜브로 각종 강의를 들으며 3개월간 HTML, CSS, JavaScript를 학습했다. 이때는 문법 외우기에 급급했던 것 같다. 시간은 참 잘 갔다. 방황하면서 맨날 책을 읽다가 뭐라도 배우니 참 즐거웠던 것 같다.

그렇게 홀로 틀어박혀서 3개월간 공부를 하다가 우연히 네이버 부스트캠프 광고를 보게 되었다. 그때는 단순히 무료로 공부를 시켜주는 곳 정도로 인식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지원했다. 네이버 부스트캠프(이제부터 줄여서 네부캠이라고 부르겠다)는 베이직, 챌린지, 멤버쉽, 총 3가지 과정으로 이루어져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는 나는 운이 좋게 멤버쉽까지 수료할 수 있었다.

베이직

나는 9기에 지원했었는데, 마침 이때 베이직이라는 과정이 신설되었다. (아마 베이직이 신설되지 않았다면 나는 떨어졌을 거다) 베이직에서는 매일 문제 해결력을 기르기 위한 문제를 준다. 다들 어렵지 않다고 했는데 그 당시 나에게는 어려웠다. 2주간 매일 문제를 풀다 보니 자바스크립트 문법에 익숙해졌고, 문제 해결 과정에 대해 익숙해지면서 조금씩 자신감이 붙었다. 내가 베이직에서 얻은 건 아래와 같다.

챌린지

이후 운이 좋게도 챌린지 입과 대상자가 되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에 사실 좀 놀랐다. 이후 4주간 시작한 챌린지는 지옥이었다. CS 관련 문제가 매일 쏟아지는데, 전공생이 아닌 나로서는 다 처음 접하는 지식들이었고, 공부와 문제해결을 모두 하려니 매일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일어나서 문제를 풀고 수면의 반복이었다.

네부캠에서 제일 힘든 과정이 아니었나 싶다. 스트레스도 받고 무리를 하다보니 중간에 계속 감기에 걸려 골골대었다. 장염도 한번 걸렸고… 이런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학습과 구현을 해내다보니 중후반쯤 나름 밸런스를 잡았다.

점점 학습한 키워드들이 많아지고, 그 키워드를 연결해나가면서 얄팍한 나만의 개발지도가 생긴게 이 시기였던 것 같다. (개발은 이런 맛이구나) 내가 챌린지에서 얻은건 아래와 같다.

멤버쉽

사실 멤버쉽은 입과 하리라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챌린지에서 수많은 고수들을 목격했는데(저녁 6시에 문제를 다 풀고 퇴근한다던가) 나는 매일 문제 푸는 것도 너무 벅찼기 때문이다. 그래서 12월에 두아 리파 콘서트나 가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운이 좋게도 입과 하게 되었다.(두아 리파 콘서트는 덕분에 취소했다)

멤버쉽은 주차 별로 과제가 주어지는 형식이었다. 그래서 챌린지보다 여유가 있었다. 이때는 이제 본격적으로 웹, 프론트엔드관련 과제가 주어졌다. 학습 시간에 여유가 있었고 그래서 학습에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있어서 좋았다. 멤버쉽 과정을 거치며 웹과 프론트엔드에 대한 얄팍한 지도를 그릴 수 있게 되었다. 프론트엔드와 백엔드 구성, 리액트에 대한 이해 등…

멤버쉽 초반에는 챌린지 경험을 토대로 학습하는 방법을 정립했다. 키워드를 빠르게 수집하고 전체 그림을 파악한 다음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다. (링크) 해당 내용을 멤버쉽 초반에 발표했다.

이 발표를 통해 많은 분들과 인연을 맺을 수 있었다. 또 슬랙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여러 사람들과 친해지고, 같이 모여서 모각코도 하면서 더 가까워졌다. 이후에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고, 이런 도움들 덕분에 무사히 멤버십을 마칠 수 있었던 것 같다. 내가 멤버십에서 얻은 건 아래와 같다.

프로젝트

프로젝트 시작 전에는 인터미션이 주어졌다. 이때 멤버쉽때 인연을 맺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시간을 보냈다. 정말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그 전에 한번 인간관계가 싹 다 정리되었었고, 사람과 단절된 이후 너무 오랜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더 소중하게 와 닿았던 것 같다.

이후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는데, 변수가 하나 있었다. 바로 프로젝트팀원 구성이 랜덤이라는 것. 그리고 나는 안타깝게도 백엔드 3명에 프론트엔드 1명 팀에 배정되었다.

아주 막막했다. 리액트를 2주간 겨우 학습한 데다가 처음 경험하는 프로젝트니까. 그래서 나는 “구현” 그 자체를 프로젝트 목표로 잡았다. 스스로 완성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기에.

그리고 실제 프로젝트를 하면서도 구현 이상의 것을 신경 쓸 여유가 전혀 없었다. 구현 그 이상의 것을 경험하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다시 돌아간다고 한들 나는 구현 이상의 것을 해낼 수 없었을 것이다. 다만 이 경험을 통해 나는 개발자가 단순히 ‘구현’에 집중해야 할 게 아니라 문제 해결을 위해 고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무엇이 부족한지도 깨닫게 되었다.

또한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이 어느 정도 섞인 상황에서는 더 표현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 역시 깨닫게 되었다.평소 말투가 좀 딱딱한 편인데, 이게 팀 프로젝트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마지막에 팀원들과 소주 한 잔 하면서 풀었다) 내가 첫 프로젝트에서 얻은 건 아래와 같다.

회고를 하며 돌아보니 2024년은 참 많은 것을 한 한 해였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개발자로서 기초 다지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전에는 개발이 무엇인지도 몰랐다고 한다면, 이제 개발자가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내가 개발자가 되기 위해서 채워야 할 게 무엇인지 어느 정도 보이는 것 같다.

2023년이 나에게 있어서 암흑기였다면, 2024년은 새로운 길을 찾은 해라고 해야 할까.
이젠 길을 찾았으니 2025년은 달리는 한 해가 될 것 같다.


24년의 책

설국 - 가와바타 야스나리
허무하고 덧없지만 그래서 더 아름답고 순수하다

2024년에는 총 20권의 책을 읽었다. 그중 가장 재밌고 인상 깊게 읽었던 책은 설국이었다. 문장 한줄 한줄 묘사가 아름답고 마치 동양화를 보는 것 같아서, 한 줄씩 음미하면서 즐겁게 읽었다. 그 외에 감명 깊게 읽었던 책들은 역량, 알아차림에 대한 알아차림, 원칙, 내면 소통, 운동의 역설이 있다.

24년의 전시

베르나르 뷔페 - 천재의 빛 : 광대의 그림

한국에서 두 번째로 열렸던 베르나르 뷔페전, 평소 뷔페의 작품은 꼭 실물로 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얼리버드가 나오자마자 바로 끊고 관람했다.

그림들의 거친 선과 긁어서 낸 듯한 질감에서 삶의 피폐함과 고통이 느껴졌다. 절망 속에서도 그림을 그리며 그럼에도 삶은 이어진다고 말하는 그의 삶의 태도가 그대로 그림에서 느껴졌다. 그의 그림 하나하나에서 강렬함, 불안, 피폐, 상처가 드러났다. 하여튼… 너무 강렬한 작품들이었다. (다시 보고 싶다)

24년의 소비

맥미니

프로젝트 기간에 맥북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엎은 적이 있다. 재빨리 노트북을 들고 서비스센터로 달려갔더니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며 잘 말려서 쓰는 수 밖에 없다는 말을 들었다. 언제 고장 날지 모른다기에 집에서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할 겸 맥미니를 구입했다.

맥미니를 구입하고 나니 부가적으로 사야 할 것들이 늘어났다. 책상, 모니터암, 모니터 조명 등등 다 사고나니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진 느낌이었지만, 내가 꿈꾸던 데스크 테리어를 완성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었다.

24년의 음식

말차 아이스크림

원래 음식보다 디저트에 더 감동을 잘 느낀다. 특히 나는 말차와 초콜릿 디저트를 정말 좋아하는데, 잠실 롯데타워에서 먹은 교토 퍼펙트 말차의 9단계 말차 아이스크림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한국에서 먹을 수 없는 진한 말차 그 자체라고 해야 할까. 이후 잠실에 갈 때마다 말차 아이스크림은 내 필수 코스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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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이미지

김다영

카비게임즈 대표이자 1인 인디게임 개발자입니다.